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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관소설집 <유쾌한 하녀 마리사> _ 난 그저 좀 눈치없는 하녀였을 뿐.

cien_ 2009. 10. 13. 22:35

광활한 활자의 더미에서 허우적 거리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되는 가슴 뛰는 글들이 있다.
혹자는 책도 음식과 같이 좋은 책을 골라 읽어야 그것이 양분이 되어
내 영혼에 고운 색을 입힐 수 있다고 하지만
사실.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어찌 읽기도 전에, 그 책이 좋은 책인지 나쁜 책인지 알 수 있다는 말일까.
혹은, 어떤 편집자가 자신의 책이 나쁜 책이라는 생각하에 출판을 한단 말이며
그, 혹은 그녀에게 좋은 책이 나에게도 좋은 책이라고 어떻게 확신하냐는 말이다.

하여.
나는 보통. 작가의 서문이나 혹은 앞의 몇페이지를 읽어보며
과연, 작가의 언어유희는 나를 들었다 놨다 할 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느냐.
또는 얼마나 강렬하게 나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제목이나 디자인을 가지고 있느냐_ 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으로 장르불문하여 책을 선택한다._ 과학서적을 괜히. 집어들어 9박10일 밤새 머리를 싸매고 읽게 되는 부작용도 있긴 하지만_

십만의 독자를 울렸던 책이 전혀 감명깊지 않았거나,  한 구석에서 족히 이십년은 넘은 듯 먼지 쌓인 책을 마치 보물찾기의 최종 우승자가 된 듯 의기양양하게 집으로가지고 돌아와
감동에 젖어 엉엉 울며 보았던 경험.
그러고 보면 독서도 음식을 먹는 것과 별반 다를바가 없다는 그 말이 틀리진 않는다.
그러나.
삼십만원짜리 꽃등심을 먹고도 배탈이 나서 이박삼일 누워있다가
이천원짜리 떡볶이를 먹고  병상에서 일어난 이에게는 꽃등심이 아닌 떡볶이가 보약이듯,
누구에게나 자신에게 맞는 책이 있고,
그 책에서 자신의 피가되고 뼈가 되고 살이 될  영혼의 양분을 찾는 것은
오로지 독자의 몫이라는 것이다.
물론, 좋은책. 이라고 평가되는 도서들에 대한 비평가나 대중들의 선택이 틀리다는 말이아니다.
다만.
나와는 조금 다를 수도 있다는. 어디까지의 가능성. 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_나의 책을 고르는 기준_은 아니었는데  서두가 괜히 길었다.
항상. 서두가 긴것이 나에게 문제.라면 문제이다.
 



천명관의 소설집을 읽었다.
대학교 때 그의 첫 장편 소설 '고래'를 읽고 그의 소설을 5년만에 처음 읽게 된 것이니 실로 오랜만에 그의 글을 읽은 셈이다.
그의 글을 처음 읽었을 때, 그 서사의 무게와 문장의 설득력에 압도된 느낌.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_아니 뭐 이런 이야기가 있단 말인가_싶으면서도 고개를 갸욱대며 인물에게 심하게 이입되어 줄거리를 따라가는 자신을 보며 화들짝. 놀랐던 것이다.
_자. 지금부터 집중하고 내 이야기를 들어봐_ 라고 말하지 않아도 좌중을 압도하는 힘있는 이야기 꾼. 의 목소리가 활자를 빌어 나타나는 것 같다고나 할까. 
......고래를 읽었을 때 그랬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장편소설보다는 단편소설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한편의 이야기를 한 호흡에 읽는 것이 이야기에 대한 이해도, 그 이야기에 대한 여운도 한숨에 오롯이 내 것인 것 같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소설집은 조금. 지루했다. 모든 이야기가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장편임에도 불구하고, 공강 1교시에 도서관에서 우연히 집은 순간부터 맨 뒷장에 다다른
그 순간까지 날 숨차게 만들었던 '고래'의 그 흡입력.은 약간 시들해진 것 같은.

내가 좋아하는 말장난 _예를 들면 _내가그린기린그림은잘그린기린그림이냐못그린기린그림이냐_ 이 도처에 깔려있기는 했었지만 박민규식의 이야기를 매끄럽게 끌고가는 유쾌한 언어유희라는 느낌보다는 조금은 심심한 이야기 곳곳에 심어놓은 별사탕처럼.

물론, '유쾌한 하녀 마리사' 나 '프랑스혁명사-제인 웰시의 간정한 부탁' 같이 유머러스한 이야기들은 낄낄대며 읽었지만,
한결 무겁고, 종잡을 수 없는 어린시절의 끔찍했던 한 장면.  씁쓸한, 사랑인지 아닌지_ 꿈꾸기도 전에 사그라든  스무살의 기억, 힘없는 가장, 왜곡된추억을지닌채 살아가던 중년의 작가의 추억이 발가벗겨지는 순간의 이야기..등등
어둡고, 역설적인 그 이야기들이 몰아닥쳐서 숨통을 갑갑하게 틀어막는 그런 느낌.

웃기거나_혹은 울리거나_
그런 이야기에 대한 내 기대를 충족 시켜주지 못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_물론 내가 그의 소설이 훌륭하다, 그렇지 않다.를 측정할 만한 충분한 식견을 가지고 있지도 않지만_ 그래서.
그랬기 때문에
그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려본다.
분명 그는. 능청맞고 재주있는 이야기꾼리라는. 기대를 하면서.


아. 여담이지만 헤어스타일은 정말 사람의 이미지에 큰 영향을 미치나 보다.
고래의 표지에선 그의 삭발인 헤어스타일이..나 좀 강하지? 라고 말하는 것 같았는데.
처진눈에 수더분한 머리에...순한 삼십대청년같은 느낌..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