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왔거든_

phin_ 2009. 12. 27.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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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에브에서의 첫 해 겨울엔 눈이 정말 많이 내렸다.
아침부터 내리는 눈이 밤이 되어도, 그 다음날이 되어도 그치지 않아서
방 안에 앉아 눈이 내리고 있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도시가 점점 눈 속에
묻히는 느낌이 들어,
이렇게 며칠동안 계속 눈이 내리다가 어쩌면 눈 속에 갇혀 버릴 수도 있겠다고,
생에 처음 갖게된 나만의 집에서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창 밖에서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던 겨울 밤들.
그러다 어느 밤엔가
전 날 부터 내리던 눈이 그치고 바람도 그치고 창 밖에는 정적만 하염없이 내리고 있었는데,
무슨 마음이었는지 밖에 나가고 싶었다.
마음이 들자 고민할 것도 없이
잠옷차림에 패딩코트를 입고 부츠를 신고 나갔는데
빈 나뭇가지만 무성한 집 앞 놀이터엔 사람 발자국 하나 없이 눈이 반사되어 반짝거리고 있었다.

너무 반짝 거려서 밟지도 못하고 만지지도 못하고 잠시 주춤거리다가
큰 맘 먹고 발을 디뎠을 때,
눈들이 서로 부딫히며 내던 사락거리던 그 소리가 너무 좋아서
옷과 신발이 젖는 줄도 모르고 눈 속을 헤매고 다녔던 그 겨울 밤.

그 겨울이 생각나곤 하는 심심한 서울의 겨울이었는데
오늘 눈이 제법 왔다.

창가에 매달려서 눈 오는 모습을 한참을 바라보다가
밖으로 나가
쭈그리고 앉아
가로등에 비춰 반짝거리는 모습을 잠시 보다가
손가락으로 눈 속을 끄적이다 보니 그리워졌다.
키에브의 겨울도.
당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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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en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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