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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rying museum 2009. 9. 23. 23:13

 사실, 2년동안 '내가 멀리 있긴 했었구나' 를 가장 피부에 닿게 느낄 수 있는 것은 -
가족이나 친구들과 떨어져있어 다들 알고 있는 어떤 사건들을 나만 모르고 있다는 것이나 ,
내가 좋아하던 단골가게들이 없어지고 낯선장소가 되어버린 것이나,
이것 저것 변해버려 나를 버벅거리게 만든 여러가지 시스템이 아니라.
바로 '문화적빈곤' 이다.

 물론, 나는 그곳에서 수많은 발레와 오페라 재즈 및 다양한 음악의 공연을 향유하였고,
매년 업데이트되는 도서를 거의 빼먹지 않고 읽었으며
그것들을 통해 손과 발이 짜릿하고 심장이 뻐근할 만큼의 재미와 나의 영혼의 안식을 얻었지만,
일주일에
두 세 권의 책과
조조나 심야 상영을 통한 두 세 편의 영화를 '섭취' 하던 내게
제한된 도서리스트와 말도 안되는 더빙영화들은 뭔가 한가지...
양상추와 토마토가 빠진 햄버거나,커피없는 치즈케익을 마주한 그런 심정이었던 것 같다.

 가족들과 함께하고 친구들을 만나느라 정신없던 삼주가 지났고,
이제 슬슬 매일매일 밖에나가서 노는것도 지겨운지라
책과 노트북을 들고 그 공백을 채워보고자 했다.
무엇을 봐야하고 읽어야 하는지 모르는 이 시점에서 구하기 쉬운 친구의 네이트온 파일방을 뒤적여 두편의 영화를 야금야금 베었다.


     <He's Just Not That Into You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결론 부터 말하자면
결국 이 영화도 등장인물들이
잃어버릴 뻔한, 혹은 잊었던 사랑을 찾거나,
사랑이 아니라면 최소한 자아를 찾거나 하는
말랑말랑한 헐리우드식의 로멘틱영화의 정석을 따르고 말았지만- 사실 그것이 이런 영화들을 찾는 이유기도 하지만 - 그 과정은 제법 사려깊고 섬세했으며 심지어는 '쿨'하기 까지 했다.
다섯명의 여러 사연을 담은 각각의 스토리의 개연성도 너무 인위적이지 않았고,
인물들의 감정의 처리도 심하게 더하거나 빠지지도 않았다.
 조금은 건성으로 희낙낙 거리며 가볍게 영화를 보다가
제나인이 남편의 외도사실을 고백받고도 덤덤하게 지나가보려고 애쓰다가
담배를 끊은 줄 알았던 남편이 담배를 다시 피우면서도 피우지 않는다고 했다는 것이
거짓말임을 알고 분노하던 그 장면을 보면서 조금 먹먹했었다.

견딜수 없는 어떤 일을 견디고자 죽을 힘을 다해 애쓰지만
결국엔 아주 사소한 일에서 무너져버렸던 쓰린 경험.
누군가 심장을 날카롭게 벼린 칼로 들쑤셔놨을 때에도 참았던 그 아픔이
손끝을 면도날도 살짝 베었을 때
주체할수 없이 터져버렸던 그런 기억이, 누구에게나, 한번 쯤은 있을 것이기에.

그래서
그저 그렇고 그렇다고 평하기에는 제법 괜찮았던 영화였다.

음...그리고 <킹콩을 들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뭔가 색다른 컬트영화같은 제목이었는데, 또 그런 영화였으면 싶었는데.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나름 신선하게 역도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였고,
여학생들의 캐릭터도 살아있었고,
종종 빵빵터지게 혹은 소소하게 재미있던 장면,
게다가 심하게 과장하지 않아도 눈물이 찔끔. 날 만큼 찡하기도 했던 영화였다.




평일 조조로 영화보는 여유로움을 언제까지 누릴 수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가장 좋아했던 그 시간.
당분간은 다시 누릴 수 있을 그 시간.
초조함이나 그리움같은 그런 것들을 잠시 잊을 수 있는 그시간.
다시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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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en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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