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약속에 무감한 이들과 함께 일을 한다는 것은 피로하다.
그중에서도, 회피로 상황을 모면하고자 하는 이라면 더욱 더.
상대가 사과하는 것을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타입이라면 정말 총체적 난국이다.
갑에게는 을이 되고, 을에게는 병이나 정도 못 되는 처지에, 뻐근해진 목덜미만 어루만지길 여러 차례.
사십대의 파이어족은 병정 주제로는 꿈도 못 꿀 일이다.
결국 주말의 위안으로 한 주를 달래보는 수밖에.
시간 약속에 무감한 이들과 함께 일을 한다는 것은 피로하다.
그중에서도, 회피로 상황을 모면하고자 하는 이라면 더욱 더.
상대가 사과하는 것을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타입이라면 정말 총체적 난국이다.
갑에게는 을이 되고, 을에게는 병이나 정도 못 되는 처지에, 뻐근해진 목덜미만 어루만지길 여러 차례.
사십대의 파이어족은 병정 주제로는 꿈도 못 꿀 일이다.
결국 주말의 위안으로 한 주를 달래보는 수밖에.
스스로의 어둠을 갈라 먹는 순간이
서로에게 곁을 내어주는 시작이다.
어떤 시작은 치열하고
어떤 시작은 한갓지다.
어둠을 갈라낸다고 빛이 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그 틈바구니에 빛 한 줄기 새어 들어올 수 있다면
비로소
암흑의 분열, 참담의 파열
하여, 맞닿을 손이 어디쯤 있을지 가늠하고
가쁘게 몰아쉬던 숨에 휴지를 둔다.
별 감흥 없이 마흔이 되었다.
주접은 예전보다 조금 줄었고, 아마 준 것 같고
어휘력은 떨어졌고
인내심은 약간, 흰머리와 마신 와인 수는 많이 늘었다.
업무 외적인 일로 문장 같은 문장을 써본 적이 언제인지 아득하다
이러다가 단어를 잃고, 문장을 잃고 서사 자체를 잃어버리고 말 것 같다는 두려움에 휩싸이곤 하다가도
또 금세 바쁜 일상이 닥쳐오면 모두 사소한 고민으로 휘발되고 만다.
작년과 재작년은 코로나에 잠겨 어찌어찌 겨우 흘러간 느낌이다.
기억의 편린들만 조금씩 산재된 채 시간을 쌓았다.
이렇게 흘러와 나이를 먹었다.
새삼스럽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마흔을 기념이라도 하고 싶었는지 결국, 오랜만에 끄적인다.
주접이 준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코로나.
세 번째 와인.
손에 쥘 수 없는 시간들.
쓸모 없는 기억들.
세 번째 이사.